본문 바로가기

🤸‍♂️ Project Deep-Dive/👀 프로덕트 탐사시리즈

당근마켓과 배달의민족의 공통점

728x90
반응형

당근마켓이 허물어버린 두 가지

며칠 전 동생이 당근마켓에 8천원에 올린 화장품이 팔렸다. 동생은 동네 인심을 발휘해 화장품과 함께 샘플을 챙겨 집을 나섰다. 거래장소인 집 앞 은행에 나도 함께 따라갔다. 꽃분홍 점퍼를 입고계신 60-70대로 보이는 어르신 한 분이 서 계셨다. 동생은 '저..혹시 **님 맞으신가요?'로 말문을 텄고, 어르신은 지갑에서 만원짜리 한 장을 꺼내셨다. 동생은 거스름돈 2천원을 가지고 오지못해 난처해했다. 그러자 어르신은 바로 옆에 있던 정육점을 보시더니, 어차피 살 고기가 있었다며 고기를 사고 잔돈을 거슬러오겠다 하셨다. 얼떨결에 동생과 나는 오늘 처음 뵌 동네이웃 분이 정육점에서 고기 고르는 것을 기다렸다. 물건을 주고 받고, 어르신은 당근마켓을 처음 써보는데 글은 어떻게 올리는 거냐며 물으셨다. 길가에 서서 두 사람은 그렇게 짧은 대화를 이어갔다. 최근 '비건 화장품'에 관심이 생겨서, 동생이 적은 '비건 화장품' 태그를 보고 구매하게 되셨다고 한다. 참 신기한 경험이었다. 길 가다 마주쳤더라면 단 한마디도 섞을 일이 없던 동네 어르신과 물건을 주고 받고, 세대를 초월해 '비건 화장품'이라는 공통된 관심사를 공유하는 경험을 한 것이다.

 

 

밈이 되어버린 당근..이세요?

 

사실 당근 마켓이 몇 년 전 화제를 불러일으키며 등장했을 때, 내 관심 밖의 일이었다. '중고거래'라는 키워드 자체가 나의 관심 밖이었기 때문이다. 그때까지 살면서 중고나라, 번개장터 등에서도 중고거래를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낯선 사람과 온라인이든 실제로든 물건을 주고 받는 일이 어렵고 무섭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당근마켓은 그런 나의 생각과 행동을 변화시켰다. 누군가의 생각과 행동을 변화시키는 것은 참으로 쉬운 일이 아닌데, 당근마켓을 통해 중고거래에 대한 장벽을 허물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허물어진 것은 비단 중고거래에 대한 어려움만은 아니었다. 어느샌가 동네이웃들과의 벽이 허물어졌다. '함께 살고' 있다는 어떤 감각이 되살아났다. 

 

 

코로나 시국에도 봄은 오고, '동네 생활' 속 벚꽃은 흐드러졌다.

동생의 당근마켓 거래를 목격한 뒤에, 나는 오랜만에 당근마켓에 접속했다. 그간 당근마켓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기사로는 '당근페이' 도입에 대한 소식들을 접할 수 있었고, 앱 내에서는 이제 제법 자리잡힌 우리 지역의 '동네 생활' 탭을 마주할 수 있었다. '동네 생활'은 같은 지역 사람들과 소통하고 정보를 주고 받을 수 있는 당근마켓 내 커뮤니티 공간이다. 오랜만에 접속한 '동네 생활' 탭에서 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동네 구석구석 아름다운 벚꽃의 풍경을 공유하고자 하는 순수하고 예쁜 동네 주민분들의 마음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왠지 따뜻하고 뭉클했다. 이것은 '내가 살고 있는 동네'이기 때문에, 우리 지역 사람들만 느낄 수 있는 무언가다. 내가 아는 익숙한 아파트, 추억 속 이름들을 마주치며, 오랜 지역 주민으로서 스쳐가는 기억들이 있었다. 순식간에 고등학교 시절 교복을 입고 걷던 우리 동네 봄 길, 그때 봤던 벚꽃, 그런 것들이 스윽 머릿속을 지나갔다. 스크롤을 내리며, 지역과 관련된 다양한 질문과 소통, 잃어버린 고양이와 강아지에 대한 글 등을 보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당근마켓의 '동네생활'에서 벚꽃 사진을 공유하는 주민들 @당근마켓

 

"당근마켓이 생기기 전에 이런 일이 가능한 적이 있던가?" 정말로 커다란 동네가 주민들로 연결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같은 지역 사람들이라는 것이 새삼 느껴졌다. 배달의 민족이 생각났다. 불과 몇 년 전 배달의 민족이 처음 등장하기 전까지, 집에서 배달 음식을 시켜먹기 위해서 우리는 전단지와 쿠폰북을 들여다보았다. 쿠폰북을 한참동안 들여다보고 뭐 시킬지 머릿속에 되뇌이고, 우리집 주소 한번 되뇌이던 그런 지난 시절의 기억이 떠올랐다. 리뷰의 개념도 없고, 쿠폰북에 딸린 종이 쿠폰을 찢어서 내밀던 그때 그 시절. 무슨 한 켠의 역사처럼 느껴지는 기억들이다. 당근마켓과 배달의 민족은 둘다 지역 기반의 일상을 변화시켰다. 그게 내가 생각하는 두 서비스의 공통점이다. 

 

 

지역 주민의 따뜻함을 공유할 수 있도록 장을 만들어주는 당근마켓 @당근마켓

 

 

아마 당근마켓 내부 팀에서, 일부 고객들이 귀여운 벚꽃 사진을 공유하고 주민들이 좋은 반응을 보이자, '우리동네 벚꽃 사진전'과 같은 이벤트를 기획하게 된지 모르겠다. 어려운 시국에, 주민들의 감성을 자극하는 데 성공한 것 같아 칭찬의 마음을 보낸다. 당근마켓은 계속해서, 지역 주민들이 자연스럽게 소통하고 연결될 수 있는 일들을 만들어갈 것이다. 그들이 준비하고 있는 당근페이, 그리고 그 너머의 일들도 모두 끈끈한 커뮤니티에 기반할 것이고, 그것은 다른 플랫폼이 쉽게 따라갈 수 없는 지점이 될 것이다. 당근마켓은 중고거래 앱이 아니라, 지역 기반 SNS의 역할을 하고 있다. "Social+"의 성격을 지닌다는 것은 생각보다 엄청난 포텐셜을 담고 있다. 예컨대, Spotify와 TikTok, Amazon과 Pinduoduo/Popshop, 팟캐스트와 클럽하우스의 차이를 만들어내는 지점이 바로 "Social+"의 힘이다. 전형적인 "Social+" 기업들은 단일한 카테고리에 기반해, 해당 프로덕트 전반에서 통합된 소셜 경험을 할 수 있게 한다. 당근마켓은 중고거래라는 단일한 카테고리에 기반해, 프로덕트 전반에서 '지역 기반'의 일관된 소셜 경험을 하게 해준다.

 

 

 

당근마켓의 우리 지역  '동네생활' @당근마켓

 

 

과거, 네이버 라인이 베트남에서 출시한 '겟잇'이 당근마켓을 표절했다는 논란이 있고도 시간이 꽤 흘렀다. 최근 네이버가 또 한번 당근마켓 표절 의혹으로 도마에 올랐다. 네이버가 지난 달, 네이버카페 앱과 모바일 웹에 ‘이웃 톡’ 서비스를 추가한 것이다. 이는 네이버 카페에서 동네 이웃과 소통할 수 있는 기능으로 동네 맛집이나 동네 사람과 공유할 수 있는 소소한 일상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이다. 위치 기반으로 이웃 인증을 완료하면 게시글을 작성할 수 있다. 새로운 시도가 어떤 시장의 포문을 열면, 유사한 서비스들이 뒤따라오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숙명같다. 물론 표절은 문제지만, 애매한 구석이 있다. 감정을 배제하고 보자면 그렇다. 비단 서비스 뿐 아니라, 모든 콘텐츠가 그래왔고, 가만 생각해보면 '예술 사조'도 그래왔다. 블루오션이 레드오션이 되며 새로운 시장이 생성되고 성숙하는 과정은 항상 그래왔지 않은가 싶다. 그래서 드는 생각은, 새로운 장을 열게 된다면 대체불가능한 오리지널리티를 보유해야한다. 그래야 생존할 수 있다. 최근 쿠팡이츠가 무섭게 성장하고 있다. 배달시장 DT는 배달의 민족이 포문을 열고, 해당 시장을 빠르게 성장시키는 동력이 되었지만, 경쟁자들은 또다른 오리지널리티를 가지고 무섭게 추격한다. 네이버는 정말로 대기업이다. 허나 당근마켓이 쌓아올린 지역 기반의 커뮤니티를 손쉽게 카피할 수 있을까 싶다. 하지만, 당장 네이버가 아니더라도 언젠가 제 3의 새로운 지역 기반 스타트업이 당근마켓을 추격할 지도 모른다. 성공할 스타트업이라면, 언젠가 누군가 빠르게 뒤따라올 것이라는 사실을 미리부터 알고 있어야 한다. 잘 나가면 누군가 따라올 수밖에 없다. 시장은 생각보다 솔직해서, 자신에게 더 편리하고 매력적인 서비스로 언제든 과감히 갈아탈 준비가 되어있다. 덩치 큰 기업들과 수많은 경쟁자들을 이길 수 있는 치밀하고 매력적인 오리지널리티를 보유하는 것은 스타트업 생존의 관건 같다.

 

 

스타트업이 해야하는 문제 해결

다시 꽃분홍 점퍼를 입은 어르신과의 만남으로 돌아가보자. 동네 곳곳에 흐드러진 벚꽃 사진과 주민들의 목소리가 공유되는 당근마켓 앱을 떠올려보자. 스타트업이 해야하는 일은 바로 이런 종류의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어쩌면 내가 불편한지도, 필요한지도 몰랐던 것들을 해냄으로써 기꺼이 나의 일상을 바꿀 수 있게 하는 것들 말이다. 사실, 배달의 민족 이전에, 나는 내가 주문을 하는 방식이 불편한 일인지도 몰랐다. 당근마켓 이전에, 동네 주민들과 소통가능한 창구의 부재에 대해 큰 불편함이나 갈증을 느낀 적도 없다. 기존의 방식과 일상에 너무 익숙해져있기 때문에, 우리는 생각보다 우리가 무엇을 원하는지 잘 모를 수 있다. 학부시절, 교수님께서 그런 이야기를 해주신 기억이 났다. 인류가 '입자'의 개념 자체를 몰랐을 때는 그게 세상에 있는지도 모른 채 살았다는 것이다. 즉, 모르면 없는 것이다.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아내는 것은 고객이 할 일이 아니다.'

- 스티브 잡스


기존의 과정을 자동화해준다거나 빠르게 해결해주는 것은 우리가 지금 쉽게 상상할 수 있는 최선의 해결책일 수는 있어도, 진짜 문제 해결은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 당장 내 눈에 해결책처럼 보이는 것들에 시야가 갇히지 않도록 경계할 필요를 느낀다. 당근마켓은 원거리 중고거래의 위험성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들 가운데 지역 기반 직거래를 선택했다. 그러니까, 누군가는 중고거래의 위험성을 제거하기 위해 회원 정보 수집을 강화한다든가, 패널티를 고안한다든가 기존 트랙 위에서 '최적화'를 고민한다면 당근마켓은 전혀 새로운 판을 짠거다. 대한민국을 작은 지역단위로 묶고 거래에 제약을 두어가며 말이다. 아마 해외 스타트업 선례들도 많은 영향을 주었을 것 같다. 처음에 지역기반 커뮤니티를 생성해가는 당근마켓을 보면서, 미국의 넥스트도어가 생각났다. 넥스트도어는 동네 이웃간 소셜네트워킹 서비스로, 2019년에 이미 시리즈 F 펀딩으로 1억 7천만 달러를 투자받으며 유니콘 반열에 올라간 바 있다. 실은 처음에 넥스트도어와 관련 기사를 보고, '대체 왜..?'했던 기억이 난다. 내가 안다고, 당연하다고 믿는 것을 경계하자. 지금의 나는 내가 경험해보고 아는 것에 한해서만 알고 있으니. 

 

 

당근마켓과 하이데거

 

 

당근마켓은 자신의 거주지역과 동네 주민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다. 하이데거의 철학을 공부하며 "우리는 고향 상실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음에 개탄했던 기억이 스쳐갔다. 하이데거는 대도시가 수많은 사람들을 빨아들여, 세계는 황폐해졌고, 신들은 떠나버렸으며, 대지는 파괴되고, 인간들은 정체성과 인격을 상실한 채 대중의 일원으로 전락해버린 시대라고 칭했다. 당근마켓에서 우리는 각자가 정주하는 '동네 생활권' 안에서, 그곳에서만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와 소재들을 생성하고 공유한다. 나의 지역과 동네에서 고유한 일원이 되는 경험. 당근마켓이 중고나라나 번개장터와는 전혀 다른 플레이를 펼쳐나가는 지점이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언제든 부족한 부분에 대한 피드백이나 새로운 인사이트는 대환영입니다. 🙌

.

.

.

.

.

DEEP WIDE STUDIO

스피노자는 말했습니다. "나는 깊게 파기 위해 넓게 파기 시작했다."

저는 '철학'을 전공하며 인간의 근본에 대해 탐구했고, 

인간의 일상을 기술적으로 혁신하는  'IT 업계'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깊어지기 위해, 천천히 넓은 물로 나아가는 중입니다. 

인스타그램으로 더 가까이 소통해요!

Instagram @skyblueyekk

Github: https://github.com/yekyung2

Gmail yklee.ace@gmail.com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