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ight Archive] 구글 인터랙티브 디자이너로 향하는 역사의 서막, 김종민 디자이너의 Portfolio Video

뜻밖의 영감

매일 그날 영감을 얻은 콘텐츠에 대해 한 개씩 기록하는 일이 이렇게 어려운 일일줄 몰랐다. 영감은 사방에서 받는데, 각각의 콘텐츠에 대한 이해, 나의 생각과 감정을 복기하며 매번 글로 정리하는 것은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그 영감들을 꾹꾹 눌러담는 이 행위가 분명 나와 다른 누군가에게 보탬이 되리라 믿으며 열심히 해보고자 다짐한다.

 

어제는, 아트프로젝트를 같이 했던 팀 단톡방에 오랜만에 카톡이 올라왔다. 영감을 주고 받던 고독한 카톡방이었다. 링크가 띡 하고 올라왔다. 유학이나 집안의 경제적 도움 없이 포트폴리오로 뉴욕의 유명한 에이전시에 입사하고, 지금은 구글의 인터랙션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는 김종민 디자이너님의 2010년 포트폴리오 영상이었다. 나래이션이 입혀져 어떤 과정과 의도 속에서 작업물이 탄생했는지 디테일하게 엿볼 수 있었다. 

 

Youtube, 인터랙티브 디벨로퍼, <해외취업하려고 밤새서 만든 포트폴리오 웹사이트>
https://www.youtube.com/watch?v=TzNQs85fL1w

김종민 디자이너_해외취업하려고 밤새서 만든 포트폴리오 웹사이트/ Youtube 인터랙티브 디벨로퍼 https://www.youtube.com/watch?v=TzNQs85fL1w

내가 꿈꾸는 크리에이티브

이 다소 투박한 제목 뒤에 숨겨진 영상은 엄청났다. 영상을 보는 내내 '와' 소리가 절로 나왔다. 뒤로 갈수록 '와'의 강도는 더 심해져 짜릿하기까지 했다. 의미를 궁구하는 데 큰 가치를 두고 사는 철학도로서, 어떤 상품, 공간, 서비스 그리고 콘텐츠를 마주할 때마다, 왜 이런 컬러를 택했는지, 왜 이런 형태가 채택되었는지, 왜 이런 요소가 더해졌는지, 왜 이것을 다루는지, 그런 것들에 언제나 숨은 이유가 있기를 기대했다. 그런 이유들이야말로 매일 매일의 일상에서 만날 수 있는 일종의 철학이라고 생각했다. 김종민 디자이너님의 포트폴리오에는 모든 과정이 하나의 내러티브를 형성하고, 모든 디테일에 충실한 이유와 논리가 존재했다. 바로 이런 것이었다. 형태는 다를지언정 내가 꿈꾸던 창조성은 단순히 감각, 감에 의한 아름다움이라기보다, 의미와 근거가 존재하는 어떤 것이었다. 돌이켜보면 시대를 이끈 모든 아티스트들의 작업물에는 그런 거룩함이 있었다. 영상을 다 보고 나서 <해외취업하려고 밤새서 만든 포트폴리오 웹사이트>라는 유튜브 영상 제목을 다시 봤다. 굉장히 겸손하고 솔직소탈한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구글 인터랙티브 디자이너로 향하는 역사의 서막> 정도는 되어야 하는 거 아닌가? 싶었다. 그런데 그래서 사람이 더 커보였다. 

 

화면의 여백이 생기게 된 이유, 그것에 시각적 재미를 더하기 위해 어떤 방식의 아이디어를 전개해나갔는지 보여준다.

철저한 논리와 창의적 실험 속에서 탄생하는 크리에이티브의 힘을 느낄 수 있었다.

 

튀지 말고 차별화하라

논리에 따라 자신만의 디테일한 내러티브를 만들고 크리에이티브를 발휘하기 위해, 아마 '기본'을 쌓는 치열하고 두터운 시간이 있었을 것이다. 언젠가 아빠로부터 그런 제목의 책을 받았다. '튀지 말고 차별화하라.' 솔직히 책 제목을 보고 속으로 많이 찔렸다. 그래서 그 책을 멀리했는지 모르겠다. 그냥 직감으로 느꼈다. 나한테 튀는 것과 차별화의 개념이 뒤섞여있었구나 하는 것을. 단지 튀는 것 말고 차별화하기 위해서는 지난한 인고의 시간이 필요했다. 스무 살 이후로 청개구리처럼 부모님 말씀을 잘 안들어서 그 책을 읽지는 않았지만.. 이상하게 한 번 본 그 책 제목이 잊혀지지가 않는다. 지금도 이렇게 문득 문득 생각이 난다. 그럼 한 번쯤 읽어볼 법한데 여전히 안 읽었다.. 창의성을 독특함과 특이함으로 착각하던 때가 있었던 것 같다. 그간의 다양한 활동과 프로젝트를 통해 나도 나름의 논리에 따른 내러티브를 만들고자 했지만, 한 끝이 달랐다. 그 한 끝을 만드는 것은 기본에 투자하는 '더 많은 인내'이며, 그 한 끝이 곧 전부라는 것을 깨달았다. 

 

피카소가 10대 때 그린 그림이다. 예전에 이 사실을 알고 꽤나 충격을 받았었다. 피카소도 이런 과정이 있었는데 나는 뭘 믿고 그동안.....? 어딘가 숨고 싶다. 차별화하기 위해 인내하자. 튀지 말고 차별화하자. 읽지도 않은 책 제목을 되뇌인다. 어쩌면 나는 한 번도 끈덕지게 인내해본 적이 없었다. 아마도 수능이라는 타의적인 인내 이후에, 자의적인 '지독한' 인내는 없었던 것 같다. 하고 싶은 것만 했지... 근데 요즘 느꼈다. 진짜로 내가 하고 싶은 걸 잘하기 위해서는 내가 하기 싫은 걸 더 많이 해야한다는 것을. 이번에는 꼭 뭐가 됐든 꼭 끝까지 가봐야겠다. 그만 요란 떨고 이만 가보겠다.. 

 

P.S 좋은 영상을 공유해준 SH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