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적인 아이디어 디벨롭

이 날의 회의에서 나는 약간 멘붕이었다. 설과 산과 조제의 뇌가 빠르게 돌아가는 속도에 내가 템포를 맞춰가지 못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준은 42서울 일정으로 오늘 회의에 참여하지 못했다.) 너무 빠르게 흘러가서, 캐치업하기 바쁘기도 했고, 어떤 생각을 해야할지 약간 감이 안잡혔다. 특히 개발 사이즈에 대한 감이 없으니, 우리가 이번 해커톤 기간 동안 산출해야할 MVP가 어느 정도의 볼륨이 되어야 하는건지 헷갈렸다. 그래서 내 머릿속에 떠오른, 우리의 서비스 아이디어에 대한 물음표들이 몇 가지 있었는데 그게 이 단계에서 유의미한 물음표들인지에 대한 판단이 서질 않았다.
이건 확실히 서비스 기획에 대한 지식과 경험치 차이에서 온다고 느꼈다. 뭘 공부한다고는 했지만, 실제로 프로젝트를 진행하보며 습득한 지식이 아닌 이론적인 지식들이어서 막상 적용하려니 어려웠고, 심지어 알고있는 지식의 양도 팀원들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고 느꼈다.

예를 들면, 이 그림 진짜 백날 봤는데 뭐하나. 자동차의 첫번째 MVP는 스케이트보드라는 개념, 얼마나 멋지고 이해가 쏙쏙 잘 됐는데! 그런데 막상 내 프로젝트를 진행하려고 하니, 내가 지금 그리고 있는 아이디어에서의 스케이트보드 정도 되는게 대체 뭘까? 하는 의문들이 생기는 것이다. '린하게 돌릴 수 있는 사이즈'라는 개념을 아는 것과, 실제로 그 개념을 적용해서 뭔가를 만들어내는 것은 정말 다른 문제였다.
그리고 유저플로우, 정보 구조도 이런 단계로 들어서니 역시나 뇌가 급격히 느려졌다. 아, 공부를 진짜 많이 해야되겠는데 - 프로젝트 경험을 통해 전체 플로우를 빨리, 많이 경험해보는게 중요하겠다 싶었다. 내가 만약 혼자서 엔젤핵에 기획자로 참여했다면..? 갑자기 눈 앞이 깜깜해졌다. 개발자들과 디자이너님들이 나누는 대화 사이에서, 무슨 말인지 나는 과연 이해하고 소통할 수 있었을까? 혼자 이런 생각하면서 표정이 꽤나 심각해졌나보다. 산이 중간중간 내 표정을 살피는 게 느껴졌다. 풀리지 않는 의문점들을 이야기해달라고 했는데, 뭐가 지금 풀리지 않는 것인지 말하기도 어려웠다. 그냥 덩어리로 어려웠기 때문에, 아기가 자신이 뭘 원하는지 잘 모른채 그저 우는 것처럼, 나 역시 그저 응애 할 뿐이었다. 많이 알려주세요 팀원님들.
이 상황 실화입니까 휴먼?
이 날의 화룡정점 스토리로 가기 위해, 살짝 필요한 서사가 있다. 이야기는 전 날 저녁으로 잠시 거슬러 올라간다. 전 날 저녁, 멘토 라이브 강연 중에 정말 정말 꼭 듣고 싶은 세션이 있었다.

이때 우리는 첫 아이디어 회의중이었다. (능력치도 부족한데, 한 발 늦게 시작하고 있다는 생각에, 살짝 쫄리는 상태였다.) 그래서 전날 라이브 강연 영상들은 모두 다시 볼 수 있도록 업로드되었길래, 이왕이면 같이 있을 때는 회의를 하고 각자 집에 가서 새벽에 올라온 강연 영상을 보기로 했다.
그런데.. 회의를 마치고 집에 가서 아무리 기다려도 영상이 안 올라오는 것이다. 아무리 기다려도 영상이 안올라오자 느낌이 쎄해진 나는 Thread에 댓글을 남겼다. 그러자 이런 충격적인 대답을 들은 것이다..

하필.. 하필! UX, Protytyping & MVP 강연만..! 그것만... 공유가 어렵다고 하셨다. 이 강연을 진행해주셨던 멘토님은 PXD의 시니어 서비스 디자이너님이셨다. UX에 대해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PXD가 어떤 곳인지 알 것이다. 어찌나 아쉽던지..
아, 1:1 멘토링이있었지?

엔젤핵 해커톤 주간 동안, 이런 식으로 멘토님들께 멘토링 신청을 할 수 있다. 우리는 이날 오랜 회의 끝에 살짝 갈피를 못 잡던 중, 아! 1:1 멘토링이 있었지? 하고 멘토링 기회가 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사실 뭔가 준비된 상태에서 질문을 해야할 것 같았지만.. 막연한 지금 멘토링을 통해 뭔가 좋은 조언을 받아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우리는 오늘 참여할 수 있는 멘토링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앗, 어제 놓친 강연의 김민우 멘토님이 바로 오늘, 멘토링이 가능하시다는 것을 발견했다! 빠르게 슬랙의
#mentoring_today 채널로 들어갔다.

아니 이럴수가. 우리는 또 한 발 늦고 말았다. 이 때 시각이 9시가 이미 지났던 것 같다. 그리고 이미 제시된 멘토링 시간도 모두 꽉 차있었다. 조금만 더 부지런할 걸 아쉬움의 탄식을 내뱉었다.
사실 이 같은 멘토링 신청 포맷이 있다는 것을 산과 내가 확인하는 동안, 설이 대뜸 김민우 멘토님께 슬랙 메시지를 보내고 있었다. 기대도 안했는데, 10시부터 간단하게 멘토링을 해주시겠다는 답변을 받았다. 이때가 거의 10시 직전이엇는데, 우리가 요즘 자주 애용하고 있는 코워킹 스페이스 공간 TTP 원데이패스는 10:00pm까지만 운영하기 때문에, 우리는 기쁘면서 살짝 멘붕인 상태였다. 어떤 내용을 말씀드리고 조언을 구해야하지? 일동 정신이 뻔쩍 들었다. 근처에 24시 카페로 최대한 빨리 움직여야 했다. 그 와중에 멘토님과 컨택했던 설은 떠나야하는 상황이어서, 나랑 산 둘이서 빠르게 카페로 이동하며 행아웃을 깔았다. 시간이 딜레이돼서 안되겠다 싶었던 우리는 길을 걸어가면서 폰으로 행아웃을 켰다. 심지어 나는 행아웃이 안열려서, 산의 이어폰을 나눠끼고 걸어가며 '멘토님 안녕하세요'를 시전했다. 악..ㅋㅋㅋㅋㅋ.. 일부러 시간 내주셨는데 이런 열악한 상태로 연락드려서 너무 죄송했다. 그런데 흔쾌히, 그러면 근처 카페 이동해서, 편하게 준비되면 연락달라고 10시40분에 보자고 말씀해주셨다. 우리는 바로 앞에 할리스가 있다며 폰 카메라로 손수 비춰서 보여드리며.. ㅋㅋ 금방 연락드리겠다고 말씀드리고 허둥지둥 이동했다. 약간 이 상황.. 코미디인줄
PXD 시니어 서비스 디자이너님과의 Hangout 만남
우리는 급하게 자리를 잡고, 당장 지금까지 우리가 논의해왔던 뒤죽박죽의 상황을 복기해보았다. 당장 우리의 아이디어를 설명해야한다는 생각에 긴장이 잔뜩 들어갔다. 우리의 아이디어의 목적, 풀고자 하는 문제, 메시지 등을 빠르게 정리해보았다. 그리고 질문하고 싶은 것들을 몇 가지 적어보았다. MVP의 사이즈를 어떻게 생각하면 좋을지, 우리 아이디어를 듣고 어떤 생각이 드시는지 의견을 간단하게 듣고, 작은 결과물이라도 만들고 싶은데 그러기 위해서 UX쪽으로 무엇을 공부하면 좋을지 여쭤보기로 했다. 약간 침착함을 잃기 직전이었으나, 어찌저찌 10시 40분이 되었다. 카페의 소음이 겹칠까봐 한명만 키고 이어폰을 나눠껴 참여하기로 했다. 멘토링이라는 개념이 나에게는 굉장히 낯선 일이어서, 긴장을 많이했다. 행아웃 시작 직전에, 산이랑 둘이서 '누가 먼저 말할래' '너가 해.' '아냐 너가해.' 하며 짧은 옥신각신을 펼치기도 했다.
결국.. 내가 먼저 우리가 생각한 서비스를 말씀드리게 되었다. 근데 긴장돼서 산이 옆에 띄워놓은 우리가 정리한 멘트를, 슬슬 읽더니 점점 보고 읽게 되었다.ㅋㅋ...... 중간에 멘토님이 "잠깐 지금 뭐 보고 읽고 있죠?"하시는 것이다. 나는 완전 뜨끔!해서 앗..어버버하는데, 그냥 그 텍스트를 복사해서 보여달라고 하셨다. 머쓱 민망 부끄럽의 감정이 교차했으나, 긴장할 거 없이 편하게 이야기 주고 받으면 된다고 하셔서 마음이 조금씩 편해졌다. ㅎ....
이제 더이상 주니어라고 한계 짓지마!
우리가 생각한 아이디어에 대해, 질문도 주시고 피드백도 주셨다. 본인이라면 왜 이 서비스를 써야하는지? 와 같은 질문도 해주셨다.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타겟 유저들이 생각보다 너무 제너럴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가 생각했던 퍼소나를 표현하던 요소들은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환경'에 대한 조건들이라는 것을 지적해주셨다. 이 지점이 우리가 간과하고 있던 중요한 부분이었다. 타깃 고객을 구체화시키려고 형용했던 많은 문구들에 그 '사람'에 대한 Human-centered한 요소들은 없었던 것이다. 어떤 식으로든 고객 리서치가 좀 더 필요했다.
오늘의 화룡정점은 '속성 강의'에 있었다. 우리가 계속 '주니어로서' , '주니어라서' 라는 말을 사용했더니, 어제 우리가 놓쳤던 강연을 속성으로 진행해주시겠다고 하셨다. 대신, 앞으로 스스로가 주니어라고 생각하며 한계 짓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우리는 화들짝 놀라 정말 영광입니다 하며 공책을 준비했다. 진짜 산이랑 나랑 콜라 먹은 다람쥐 둘마냥 분주했다...하지만 생각보다 우리는 야망이 큰 다람쥐들이었다. 한 마디라도 놓칠 수 없어..


내가 그동안 막막하고 거창하게 생각했던 User Journey, Interface design, Wireframe/ Prototype이 얼마나 심플하고 직관적으로 이루어져야하는지 배울 수 있었다. 당장 개발에 대한 부담을 갖기 보다, 앞단에서 얼마나 논리적으로 설득력 있는지, 시장성이 있는지 증명할 수 있는게 중요하다는 말을 해주셨다. 이 일주일을 개발에 목숨걸려고 하지말고, 여기서 발생한 아이디어가 중요하고, 앞으로 이 아이디어가 촉발제가 되어 앞으로 어떤 일이 이루어지는냐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잠깐 봐주시기로 했던 멘토링은 점점 길어져 한시간 넘게 이어졌다. 멘토님은 이왕 시간 많이 쓰게 된거, 물어보고 싶은거 편하게 다 물어보라고 하셨다. 우리는 이 소중한 기회를 져버리고 싶지 않아, 뭐라도 유의미한 질문을 하고 싶었으나 머릿속이 하얘졌다.. 멘토님은 눈치 채셨는지 먼저 우리가 앞으로 해나가면 좋을 방향에 대해 가볍게 되짚어주셨다. 평일 자정에 가까운 시간까지 아낌없이 시간을 내어주신 김민우 디자이너님께 정말 감사의 말씀 드리고 싶다.
막차를 타고
산과 나는 한껏 격양된 상태에서, 방금 들은 내용들에 따라 우리의 상황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졌다. 우리 서비스의 핵심 유저는 누굴까? 부터 시작해서, 우리 서비스의 Value proposition, Key feature 3가지는 무엇인지, 그 사이사이를 쪼개면 고객은 어떤 플로우로 경험을 하게 될지, 각 기능들이 화면 위에 표현되면 어떠한 형태일지 생각이 많아졌다. 내일 회의에서 팀원들에게 전해줄 이야기들을 기쁜 마음으로 되새기며 막차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 다른 어떤 곳에서도 듣지 못했던 실무자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교과서 안과 밖이 어떻게 다른지 살짝 엿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멘토님은 우리팀결과물이 올라오는지 꼭 지켜보시겠다고 말씀하셨다. 나와 산은, 어떻게 해서든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무언가 결과물을 올리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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