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대면 심층 인터뷰 & Affinity Diagram #2 혼자였다면 배울 수 없었던 것들

다시 머리를 굴리려면 예열이 필요해

24시간이 채 지나지 않아 우리는 다시 모였다. 홍대의 한 카페에서 만났는데, 주말 낮이라 그런지 카페가 북적였다. 다소 어수선한 공간 분위기 속에서 회의를 진행했다. 어제 밤 열띤 회의에서의 텐션과는 또 사뭇 달랐다. 약간의 예열이 필요했다. 이날 회의의 로드맵은 다음과 같았다. 

 

To-Do list
1. 어젯 밤 끝까지 마무리 짓지 못한 어피니티 다이어그램 리뷰 완수하며 인사이트를 도출하기
2. 핵심 니즈 5가지 내외로 추리기
3. 핵심 타겟 설정하기
4. 5whys를 거치면서 아이데이션 시작 

 

이날은 왠지 팀 내 분위기가 쳐졌다. 아마 하루 풀타임으로 빡세게 회의를 진행하고 나면, 그 회의 내용에 대해 각자 다시 숙지/정리 하고 새로운 인사이트를 채워넣는 시간이 최소 하루 정도는 더 필요하지 않은가 싶다. 전날 밤까지 회의를 하다가 다음날 바로 거의 일어나서 다시 만나니까, 다들 좀 지쳐보이기도 했다. 내 안에서 새로운 이야기가 나오지 못하는 느낌도 들었다. 회의 일자 템포 조절도 다같이 논의를 한 번 해봐야겠다.

 

여차저차 TO DO LIST의 1번을 마치고, 저녁 식사 후 이어서 회의를 진행하게 되었다. 우리는 회의 공간에 대해 고민이 많아졌다. 코로나19 때문에 마땅한 회의 장소 구하기가 쉽지 않아 회의비로 지출되는 개인 비용이 너무 커지고 있었다. 한 번 회의를 진행할 때마다, 카페-밥-카페라는 비용이 들다보니 꽤 적지 않은 돈이 고정비용으로 소비되고 있다. 그런데 이 와중에 마인드 리프레쉬를 원하는 일부의 요구로 알코올 파는 카페를 찾다가, 내가 제안한 장소로 갔는데 예상치 않게 알콜밖에 팔지 않는 불상사를 마주했다. 근데 심지어 그냥 카페보다 비쌌다.ㅎ 다들 이미 지치기도 했고, 다소 까칠한 사장님의 응대로 2차 회의도 분위기가 왠지 시작부터 평탄하지만은 않았다. 그래도, 우리 호화 사교모임처럼 지출한다며 껄껄 웃으며 분위기를 환기할 수 있었다. 

 

 

잠깐, 지금 우리 제대로 가고 있는거 맞아?

회의를 진척하면서, 여전히 풀리지 않는 어떤 분위기와 느낌들이 있었다. 우리의 논의 전개에 대해 뭔가 명쾌하지 않은 느낌이 들었다. 어떻게든 파이팅 넘치게 진행하고 싶었으나, 아마 다들 조금씩 그런 느낌을 받았던 것 같다.

 

 

중간에 말 없이 앉아있던 설이 다소 심각한 표정으로 의문을 제기했다. 지금 뭔가 이상하다는 신호였다. 그는 현 상황에서 다음의 두 가지를 문제로 지목했다.

 

1. 고객 인터뷰부터 심도 깊은 인사이트 공유까지 잘 이어지다가, 굉장히 제너럴한 문제 정의로 귀결되어버렸다. 
2. 그리고 앞단의 과정이 필요없을 정도의, 아이디에이션 단계로 갑자기 건너뛴 기분이다. 

이 말에 동의했던 것이, 나 또한 앞단의 우리가 한 과정의 서사가 이어지는 느낌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설은 우리가 지금 아예 솔루션 단계로 넘어가는 거라면, SKT에서 제시해준 기술들에 대한 공부를 먼저 하고 기술과 연결지은 솔루션을 내야할 것 같다는 의견을 냈다. 나는 생각이 많아졌다. 문제 상황은 공감했지만, 제안된 대안이 최선인지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이 내게 불분명했다. 한 동안 생각에 잠겨 무슨 말을 하지 못했는데, 지금 이렇게 된 상황의 원인이 무엇이며 어떻게 해결해나가면 좋을지 생각하는데 시간이 필요했다. 한 사람의 책임은 아니지만, 이런 방향으로 해보자/ 이런 도구를 써보자 제안했던 입장에서, 이 상황에 어느정도 책임을 느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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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문제였을까?

1. 출발점/목표점이 여러 개였다. 1)원데이 디자인씽킹 스프린트 2) 엔젤핵 (해커톤) 3) SKT 행복인사이트 (소셜 사업 아이디어 제안대회) 이렇게 총 세 개의 지점이 복합적으로 얽혀있었다. 시작은 원데이 디자인씽킹 스프린트였는데, 이 때 정해진 주제로 이어서 엔젤핵과 SKT 행복인사이트를 한 번에 준비해보자고 결정내렸다. 그러나 한 개의 디자인씽킹을 통해 모든 목표를 만족할 수는 없었다. 각각의 기준, 방법, 목적이 조금씩 달랐기 때문이다. 1타2피 하자는 생각이 앞서서, 우리는 이 부분을 간과했다. 각자 주로 염두해두고 있는 부분이 달랐을 것이고, 그것에 대한 공유가 없었다. 그래서 커뮤니케이션에 오차가 생길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2. 어피니티 다이어그램 이후, 산출한 클러스터링 변인으로 퍼소나를 만드는 과정을 생략했다. 즉, 우리가 반드시 최우선으로 만족해야하는 제1고객에 대한 정의를 제대로 하고 넘어가지 못했다. 사실상 어피니티 다이어그램의 본질에는 다가서지 못한 채, 바로 표면적인 현상으로 문제를 define을 하고 바로 솔루션 단계로 건너뛰었다.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우리는 COVID-19 교육 대처 전반적인 상황을 알기 위해 인터뷰를 진행한 것이지, 핵심 타깃을 정하고 인터뷰를 진행한 것이 아니다. 즉, 그냥 '인터뷰'를 한 것이지 핵심 타깃에 대한 심도 깊은 공감하기를 하지는 않았다. 따라서 리서치 내용을 한 번 공유한 뒤, 제1의 핵심 타깃이 누구인지 정하는 과정이 필요했다. 그리고 다시 그 뾰족한 타깃 내에서 리서치를 한 번 더 진행하고 그 안에서 작은 사이즈의 어피티니 다이어그램->퍼소나 제작이 필요했다고 생각한다. 사실 우리는 어피니티 다이어그램을 시늉만 내었지 전혀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 회의 공간이 받춰준다면, 트렐로보다는 아직은 오프라인 상에서 포스트잇으로 붙여가며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당장 어렵다면, Quick Win 프로젝트 이후의 과정에서 정석대로 진행하는 시간을 여유있게 가져보고도 싶다. 도구를 쓰기로 했으면, 그 도구를 쓰는 본질을 이해하고 단계적인 developing을 잘 숙지하고 있어야 하는 것 같다. 응용문제를 잘 풀려면, 수학의 정석 기본 개념문제부터 잘 풀 줄 알아야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도구를 위한 도구가 되지 않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만의 도구로 변형하기 위해서는 정석대로 할 줄도 알아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빨리빨리 하려다보니, 이런 과정의 생략이 생겼던 것 같다.

 

'빨리 빨리'의 원인은 또 목표 지점이 여러 개였다는 것과 이어진다. 만약 우리 팀의 지속적인 서비스 개발과는 별개로, SKT 행복인사이트 아이디어 피칭이 주목적이라면, 속전속결의 다른 접근이 필요할 수 있다고도 생각한다. 바로 이런 논의가 명확하게 이루어지지 못한 것이다. 초반에 우리가 Quick Win 프로젝트의 목적을 논의하기는 했으나, 구체적인 목적과 방향을 계속 상기하며 의사결정을 하지는 못했던 것 같다. 우리에게 제 1의 목적이 무엇인지, 우선순위가 무엇인지 이런 합의가 좀 더 이루어졌어야 했다. 

 

고로, 이것은 누군가의 책임이라기보다 팀의 의사결정에 어떤 명확한 기준이 없었기 때문에 발생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나부터가 무엇이 중요하고, 효율적이며, 성과를 낳는 방향일지 명확한 판단기준이 없었기 때문에, 누군가 의견을 제안했을 때 이렇게 가는게 맞는 것인지 다른 대안은 뭐가 있는지 말하기 어려웠던 것 같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할까?

우리는 어쨌튼 지금의 문제 상황을 어느 정도 공유를 했다. 그래서 각자 개별적인 리서치와 아이디에이션 시간을 하루 갖기로 했다. 그리고 포스트모토롤라를 진행했다. 

 

지금까지의 과정에 대한 Good, To be Good, Learnt, Next Action에 대해 다함께 공유하는 시간을 가졌다.

서로의 더 많은 의견과 생각을 공유할 수 있도록, 각자의 속도를 좀 더 배려하고 존중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때 미처 이야기하지 못했던 것들이, 집에 가면서 또 집에 돌아오고 나서 생각났다. 나만의 판단 기준, 그리고 우리 팀만의 의사 결정 기준을 세워야겠다는 생각이 가장 많이 들었다. 한 편으로, 모두에게 약간의 장애물을 만난 이 순간이 그리 유쾌한 경험은 아닐테지만, 이것만큼 값진 배움의 순간이 또 없다는 생각이 든다. 혼자였다면 결코 느끼지 못했을 그런 순간이기 때문이다. 우리 다섯사람이 이렇게 지금 시점에서 모인게 정말 흔치 않은 기회라고 생각한다. 한 명 한 명이 어떤 고민을 하며 열심히 살고 있는지를 알기 때문에, 흔쾌히 함께 해주는 것에 고마움을 느끼고 있다. 그래서인지, 한 명 한 명이 이 곳에서 함께 정말 좋은 팀 경험을 했으면 좋겠고, 그런 팀원이고 싶은데, 이 날은 마음처럼 되지 않아 생각이 많아졌던 것 같다. 왠지 팀원들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정말 디테일하게 더 많은 공부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가 모여서 원활한 팀플레이를 할 수 있기 위해서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더 열심히 준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우리가 이렇게 시간을 쏟는 만큼, 좋은 과정과 결과를 가져갈 수 있도록 후회 없이 진짜 잘 해야겠다. 많이 배우고 성장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대감이 든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든든하고 좋은 팀원이 되어주고 싶다. 갈 길이 참 멀다.

 

반대편에서 사진을 찍어준 설. 이 날 이 사진의 느낌과 기억이 왠지 오래 기억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