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다움에 대하여

이 길을 택한다는 것이, 모든 순간이 마냥 아름답고 명랑하지는 못할 거라는 생각은 했어도, 많은 순간 끝없이 나의 바닥을 마주하고, 나의 나약함과 무능함을 받아들여야하고, 그럼에도 희망을 놓지 않고 한줌 자존심, 자존감을 지키기 위해 발버둥치는 싸움이 될거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그저 나답게 살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나다운 것이란 뭔가 반짝일 것만 같았지.
 
극도로 제한된 시간과 정보 하의 속도와 성과, 성장에 대한 압박 속에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내가 미처 알지 못했던 나라는 사람의 다양한 모습들을 보게 되었다. 내가 얼마나 나약하고 게으른지, 얼마나 욕심이 많고 부족한지, 내 생각과 행동을 합치시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그동안 내가 얼마나 많은 시간을 도망쳐왔는지, 도망치고 있는지, 그런 것들에 대해 알게 되었다. 선택만으로는 내 삶이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누구보다 치열하게 선택 뒤의 책임을 질 때, 비로소 내가 얻고자 하는 뭔가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여기에는 의지와 노력, 그리고 약간의 운도 필요하다는 사실도.
 
내가 실은 온전한 책임이라는 것을 경험해보지 못했다는 사실을, 내가 역설적이게도 내 자신에게는 얼마나 관대해질 수 있는지, 내가 얼마나 내 주변에 무관심해질 수 있는지, 상대가 전하는 이야기를 온전히 듣는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내가 얼마나 평범함이라는 속성을 고루 갖춘 사람인지, 사람이 얼마나 이기적일 수 있는지, 온화한 강인함이란 얼마나 쟁취하기 어려운 일인지, 내가 지금껏 생각하고 경험해온 의지와 태도란 얼마나 가벼운 것인지, 어쩌면 승리로 이끄는 무엇보다 중요한 속성은 끈기라는 것을, 가장 가까운 사람이 짊어진 무게와 책임을 온전히 이해하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내가 나의 상처에는 예민해도 타인의 상처에는 얼마나 무딜 수 있는 사람인지, 나를 향한 사랑이든 타인을 향한 사랑이든 형상 없는 그것은 늘 다정하고 따뜻하게만 표현되기 참으로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날카롭고 예민함 속에서도 꼭 지켜내고 싶은 것들이 있다는 사실을, 진실이 아닌 것들로 상처를 주고 받을 수 있다는 것을, 때로는 낯선 이에게 베푸는 친절만큼도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나누기 어렵다는 부끄러운 사실을, 감정과 생각을 온전히 왜곡없이 전달하고 전달받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나는 그런 마냥 아름답지 못한 것들을 아주 많이 마주했다. 그리고 그 안에서 내가 지켜내고 싶은 것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되어가고 싶은 나의 조각들을 조금씩 알아가게 되는 것 같다. 
 
지금 내가 걷는 이 시간의 걸음 속에는 많은 감정들이 담겨있다. 아주 조금의 진일보 뒤에 따라붙는 수많은 감정의 꼬리들. 나의 거대한 부족함들 앞에서 때로는 무력해지곤 하지만, 그럼에도 그것들에 잠식당하지 않으려 한다. 나는 또 나의 아름답지 못한 모습을 마주했지만, 다시 숨을 고르고, 어제의 실수에 대해 내 자신과 상대와 하늘에 용서를 구하고, 그것에 책임을 지고, 다시 한걸음 가보려는 용기를 내본다. 아름답지 않은 것들 속에서도 반짝이는 무언가를 끊임없이 지켜내는 것, 그래서 비로소 내 것이 되는 그런 것들이야말로 내가 살고자 했던 나다움이 아닐까 생각하고 싶다. 
 
모든 사람이 지구에 온 이유가 있다고 믿는다. 사람마다 이 생에서 경험하고, 깨달아야하는 무엇이 있고, 내가 세상에 남기고 가야할 유산이 있다고 믿는다. 그 유산이 크든, 작든, 내가 지금과는 다른 삶을 살아볼 수 있는 선택지 앞에서, 그것을 택하고 그 새로운 환경들에 나를 적셔가며 지구에 온 나를, 나라는 존재에 대해 제대로 알아가보려 한다. 그런 생각들에 미치면, 내 마음을 꽉 채우던 거대해보이는 불안과 걱정들이 모두 과정의 일부로 느껴지며, 내 마음이 풍선처럼 부풀어 다시금 좀더 멀리 떨어져서 생각할 틈이 생긴다.  그게 내가 나다움을 이야기하는 이유다. 
 
아름답지 않은 것들 그것들을 적어내려가며, 그저 내 자신을 자책하려는 것은 아니다. 자책 그 자체는 순간의 자기 위안일 뿐,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는 사실 또한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인정하는 것에서 변화가 시작될 수 있다고 믿기에 몇 자 적어본다. 
이대로 도망치거나 포기하고 싶지 않다. 변하고 싶다. 이대로 계속 살고 싶지 않다. 달라지고 싶다. 좀 더 나은 내가 있다고 믿는다. 좀 더 따뜻하고 용기 있는 나를 만날 수 있다고 믿는다. 어떤 진흙탕 속에서도, 더 깊고 넓은 품과 따뜻한 심장으로 '우리'를 말할 수 있는 사람이고 싶다. 
 
나답게 살아간다는 것은, 찾아내는 일인 것 같다. 혹은 지켜내는 일인 것 같다. 그리고 끊임없이 향해서 나아가는 과정 그 자체인 것 같다. 가다가 고꾸라져도, 또다시 실수를 되풀이하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향해가는 것. 그 과정에서 나의 부족함들로 인해 내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을 잃거나 놓치지 않고 싶다. 그러기 위해, 어떤 지혜와 노력이 필요할지는 야속하게도 또 용기를 내 걸어가야지 알아갈 수 있겠구나 싶다. 조금씩 나아지며 함께 단단해지며 걸어가고 싶다.
 
반짝이는 이야기들만 하고 싶었다. 그러나 추함이 있기에 아름다움이 있고, 악함이 있기에 선함이 있고, 비어있음이 있기에 채움이 있을 수 있으니, 나와 내 삶, 그리고 이 여정 또한 그러하겠다. 그것을 마주하며 내가 지켜내고 싶은 것들을 지켜갈 것이다. 이 시간들이 분명 나와 우리들의 삶의 여정에 어떤 의미와 이유가 있으며, 반짝일 것임을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