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탑 헤어디자이너 '차홍'이 시대를 읽는 법 (feat. 방황하는 이 시대의 철학과 학부생들에게)

진지한 철학도는 자라서...

 

 

학부 때 니체와 하이데거에 푹 빠져 인간과 삶의 본질에 대해 탐구하고 고민하던 내 모습을 나는 기억한다. '계몽이란 무엇인가', '인간은 왜 예술을 할까'와 같은 주제를 두고 같은 과 친구와 몇 시간이고 토론하던 나는 요즘 새로운 단어들과 부쩍 가까워졌다. 프로덕트, 서비스, 앱, 웹, 시스템, 비즈니스 모델, 돈, 데이터, 데이터베이스, UX, 코드.... '인간'에 대해 알고 싶었던 내가, 조금씩 '사용자', '소비자', '고객', '인적 자원'으로서의 인간에 대해 눈을 뜨게 된 것이다. 첫 전공 수업 때, 은퇴 직전의 노교수님께서 해주셨던 '인간은 Calculating하는 존재가 아니라 Reasoning하는 존재다.'라는 말에 깊이 감복한 나는, 학부 때 인간을 인적 자원으로 이해하면 큰일이 나는 줄 알았다. (물론, 여전히 동의하며 이 때의 배움들이 지금의 나에게 영향을 주고 있다.)

요즘은 공대 출신 친구들과 어울리게 되었는데, 공대에서는 효율화를 위해 무얼 배우고, 그것이 곧바로 현실에서 어떻게 쓰이는구나 하는 것들을 이해하게 되었다. 감회가 좀 새로웠다. 실은, 그간 새로운 업계의 길목에서 몇 차례의 거절과 탈락의 고배를 경험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내가 학부 때 온종일 소크라테스니 플라톤이니, 현실에 괴리된 채, 그 위대한 근원과 본질에 대해서만 탐구했구나 하는 사실에 짧은 현타가 스친 것이다. 나는 분명 철학의 가치와 힘을 믿지만, 그것을 현실에서 내가 당장 증명하기는 어려운 일이구나 생각했다. 다른 힘을 가져야, 철학을 공부했던 것이 힘을 발휘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학부생 수준의 철학이야 사실 공부했다고도 할 수 없지만, 적어도 4년 동안, 3년 동안 누군가들이 경영을 공부하고 프로그래밍을 공부했을 시간이라 생각하면 또 그리 짧지만도 않은 것 같다. 아무튼 그렇다 보니, 자꾸만 나의 전공에 대해 위축이 되었다. 가끔씩 '철학하면 뭐 먹고 사냐'는 무례한 질문들에도 내가 철학을 공부한게 한 번도 부끄러운 적이 없었는데, 자꾸만 뭔가 스스로를 아쉬운 입장에 두게 되었다. 

 

아무도 몰라도, 나의 가치와 힘을 스스로 아는 것

 

 

 

그러던 중, 헤어디자이너 '차홍'의 영상을 보며, 내가 공부했던 것들의 이유와 힘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게 되었다. 차홍이 한 말은 어찌보면 별로 놀라운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핵심은 헤어와 메이크업의 근본에도 인문학이 있다는 거다. 인간의 본능과 욕구, 생각과 행동을 인사이트로 읽어내는 힘은, '빅데이터'와 '데이터마이닝'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기술을 배우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다만 그 기술을 통해 무엇을 도출하고, 무엇을 할지를 아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차홍은 아시아인 최초 로레알프로페셔널 파리의 세계적인 아티스트로 선정되어 전 세계를 배경으로 활동하고 있다. 메이크업과 헤어디자인이든, 어떤 영역에서든 편견 없이 시대를 읽을 수 있는 사람이, 강력한 리딩을 할 수 있는 것 아닐까 싶다. 시대 속 인간의 생각과 움직임, 욕구를 읽는 것, 내가 '철학'을 배운 이유에는 이런 것들이 있었다. 그 힘을 내 스스로 잊고 져버리는 순간, 나의 전공은 허황된 일로 전락하게 되는 거다. 나한테 달린 일이다. 철학적 통찰만 한다고 세상이 달라지는 것은 없고, 그렇다고 그것을 무시하기에는 그만의 힘이 있다. 그래서 삶과 일상에 가치있는 변화를 만들고 싶은 나는, 계속 새로운 것들을 배워나가고자 한다. 철학적 사유라는 토양 위에 새로운 배움들로 멋진 세계를 지어가보겠다. 이게 답이든 답이 아니든 사실 중요하지 않다. 아무도 몰라도, 나의 가치와 힘을 스스로 아는 나만의 이유와 논리가 필요한거다.